레이오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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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개발자가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 이른바 레이오프(layoff)라고 불리는 대규모 해고다. 최근에는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 개발자의 이야기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코로나 이후로 대규모로 인원을 늘렸던 회사들이 레이오프를 하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 레이오프란 말이 꽤나 친숙해졌다. 그럼에도 레이오프 광풍 속의 한 사람으로서 그 경험을 직접 하는 것은 흔치 않다.
이 글에서는 2026년 5월 7일에 있었던 클라우드플레어의 레이오프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아주 평범한 목요일이었다.
6개월 째 원격으로 일하면서 익숙해진 밤 미팅을 마치고 새벽 1시쯤 침대에 누웠다. 그날은 클라우드플레어의 실적 발표가 있는 날이었고, 그렇 기에 미국 시간으로 오후, 한국 시간으로는 다음날 새벽이면 또 실적에 따라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하겠구나 하는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휴대폰을 켜자, 클라우드플레어의 주가가 24% 떨어졌다는 뉴스 헤드라인이 보였다. ‘에라이 실적 쇼크라도 난건가?’ 하는 마음에 뉴스를 눌러보자, 익숙한 우리 회사의 이름과 함께 layoff라는 글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며칠 전 있었던 회사 올핸즈에서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AI 광풍 속에서도 아주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고 했던 CEO과 CTO의 발언이.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우리는 아주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우리의 시장에서의 입지가 더할나위 없이 탄탄하다고 말했던 그런 말들이. 마구 떠오르는 생각들로 머리가 혼란스러운 사이에 눈은 계속 기사를 읽어나가고 있었다.
1000명.
회사의 전체 인원이 5000명을 갓 넘었다며 축하했던 기억이 났다. 20%, 그러한 사람들 중 다섯 명 중 하나가 한순간에 직업을 잃었다는 말이었다. 현실감이 나지 않는 숫자였다. 그제서야 ‘그리고 보면 나는?’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나 노트북 화면을 켰다.
‘미국에서는 레이오프를 당하면 그날 바로 계정이 정지되고 접속이 안 된다며.’
유튜브에서 가끔씩 보던 레이오프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익숙한 패스워드를 천천히 입력하자 모니터 화면은 어제까지 개발하던 IDE 속 화면을 띄웠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채팅 앱을 열었다. 가장 최근 업데이트가 있었던 팀 채널을 열자, 디렉터가 몇 시간 전 올린 장문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와 경험을 동원했을 때 이것이 마지막 레이오프이며 다음은 없을 것이라는 것. 이건 퍼포먼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언제든 어떤 고민이든 있다면 자신에게 연락해도 된다는 것. 영향을 받은 동료가 있다면 부디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곁에 있어주라는 것. 우리 팀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오늘은 푹 쉬고 다음 주부터 일하라는 것.
홀린 듯이 글을 읽어내려간 후에는 딱 한 문장만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 팀도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 채널 멤버 목록에 들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러다 한 명, 며칠 전 미팅에서 얘기를 나눴던 동료의 계정이 비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채팅방에도 들어가 한 사람 씩 목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또 네 명, 비활성화된 사람의 목록이 보였다. 지난 주에 행사를 하며 같이 저녁을 먹었던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이젠 자신이 나이를 먹어서 여기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다.
이메일을 열었다. 새벽 5시에, CEO로부터의 레이오프에 대한 메일이 와있었다. 외부에 공개하기 전에 내부 인원들에게 먼저 발표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말. 새벽 6시에, 이어지는 메일이 와있었다. 각 나라의 노동법이 다르기에 나라 별로 공지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혹시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 기다려 달라고, 미안하다고. 다시 새벽 7시에 메일이 와있었다.
“당신은 이번 레이오프의 대상자가 아닙니다”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캘린더를 열었다. 평소와는 다른 많은 미팅들이 오늘, 내일, 다음 주에도 잡혀있었다. 회사 내 모든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팅, 한국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팅, 그리고 팀 미팅까지.
그제서야 ‘연락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마침내 떠올랐다. 어제 마지막으로 함께 미팅을 했던 팀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말을 써야될 지 몰라 “너 잘 있냐?” 하는 말을 보냈다. 답이 왔다. 자기는 괜찮다고, 너는 괜찮냐고.
전날 대화를 나누던 유럽에서 일하는 친구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우리는 분명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유럽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어 자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바로 답이 왔다.
자기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일단 계정은 살아있다고. 그런데 자신은 아직 회사로부터 답을 듣지 못했다고. 분명 한 시간 내로 답을 주기로 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답이 없다고. 그래서 떨리는 마음에 아직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고.
답을 여러번 썼다 지우다, 분명 실수일 것이라고, 곧 연락이 올 것이라고 꾹꾹 눌러담아 답을 보냈다. 그러자, 그에게서 자신은 이제 잘렸다는 것을 받아들여가는 중이라고 답이 왔다. 그리고 거의 한 달이 지나서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그날은 평소 엄청나게 쌓여있던 메일함이 조용했다. 수많은 회사의 채팅방들도 쥐 죽은 듯 아무도 말이 없었다.
레이오프가 지나간 후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CEO나 각 팀의 리더들이 앞으로의 계획을 여러 번 이야기했고, 질문을 받았다. 팀의 계획을 새롭게 짜기도 하고, 매니저와 심리 상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만 그 후의 이야기를 더 쓰기 보다는, 여기서는 그냥 레이오프 당일에 있었던 일들과 감정들을 얘기해 보고 싶었다.
이 글의 초안은 레이오프가 있었던 당일에 썼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그걸 기록해놓고 싶은 마음이었고, 거의 반 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정리해서 글을 올릴 마음이 들었다.
Author ryanking13
LastMod 2026-10-22